쎄르반떼스와 풍자소설 «돈 끼호떼» (1998)
(에스빠냐어로 번역된 게시물 )
세계작가 일화
쎄르반떼스와 풍자소설 «돈 끼호떼»
쎄르반떼스 (1547~1616)는 1570년에 군대에 입대하여 뽀르뚜갈의 정복전쟁에 (...)되여 싸우던 중 영국해적단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된 적이 있었다.
그가 5년간이나 쓰라린 포로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여 고향 헤나레스에 찾아온 때는 1580년 겨울이였다.
그런데 있어야 할 집은 온데간데 없었고 옛집터 자리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을 뿐이였다.
그는 10년전 옛집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주위를 살폈다. 상상한 뽀뿌라나무가 서있는것으로 보아 분명히 옛집터였다.
순간 그는 실망했다. 푹 꺼진 그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지여 흘러내렸다. 그는 뽀뿌라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서 넋잃은 사람처럼 명상에 잠겨있었다.
«젊은이는 춥지 않는가?»라는 석쉼한 소리를 듣고 쎄르반떼스는 머리를 들었다. 웬 할머니가 다가오며 물었다.
«저런 머리칼이 길게도 자랐구만. ... 텁석부리같으니라구. 그래 자넨 어디서 오는 길인가?»
할머니는 쎄르반떼스의 람루한 옷모습을 아래우로 흩어보며 다시 묻는것이였다.
«제 집을 찾아왔지요.»
«제 집이라니 어딘데?»
«바로 뽀뿌라나무가 선 여기지요. ...분명히 여깁니다.»
순간 할머니는 흠칫 놀라더니 «네가 미겔이란 말이냐? 정말 네가 내 아들이란 말이냐?» 하며 아들의 품에 와락 안기었다.
서로 얼싹(?)안은 두 모자는 오래동안 흐느껴울었다.
«얘야, 죽었다던 네가 살아왔구나. 이게 꿈이냐 생시냐?»
아들의 품에 안긴 어머니는 흐느끼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쎄르반떼스가 해군에 입대한 며칠후 아버지는 인차 돌아가고 그후 어느날 영국해적단이 (...) 동생들을 무창히 불에 태워 죽였다는것이었다.
쎄르반떼스는 집을 찾아 왔지만 어머니의 말을 듣고보니 살아갈 길이 막연했다.
그는 식량공급원의 일자리를 겨우 얻기는 했으나 (...) 못되여 <공급랑비죄>란 억울한 (...) 쓰고 체포되였다.
그때 그가 감급된 감방에는 수십명의 기사들이 갇히여있었다.
봉괴되여가는 봉건제도를 다시 복귀하라는 이 <기사>(군사적공훈과 개인의 명예에 포로된 에스빠냐 젊은 봉건귀적들)들의 허황한 망상, (...)리적인 반광은 쎄르반떼스로 (...)은 쎄르반떼스로 하여금 장기간 (...) 창작적정열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이딸리아의 (...) 기사소설, 희극, 비극들을 감방에로 가져오게 하여 정열적으로 탐독하였다.
그는 감방안에서 장편소설의 구성을 (...). 그로부터 10이 지난 1605년에 그는 유명한 풍자소설 <돈 끼호떼> 제1부를 완성하였다.
사실 쎄르반떼스는 자기 생애를 돌이켜보며 (...) 슬퍼해야했다. 그러나 <돈 끼호떼>에서는 눈물이나 슬품이 아니라 조소와 쓴 웃음만이 터져나온다.
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눈물을 피하기 위하여 웃었고 눈물을 피(?)하기 위하여 대담하게 조소하였다.>
이것은 소설 <돈 끼호떼>가 비극으로 되지 않고 풍자작품으로 되게 된 사연이기도 했다.
전 병 두
청년문학 주체 87(1998)년 10호 (루계재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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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회
낸 곳 문학예술종합출판사
인쇄소 평양종합인쇄공장
인쇄 주체 87(1998)년 10월 1일
발행 주체 87(1998)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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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 86239 값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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